
봄은 가족여행에 가장 잘 맞는 계절입니다. 포근한 기온과 신록, 꽃길이 어우러져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죠. 이번 글은 전주·경주·순천을 중심으로 가족 친화 코스, 아이 동반 동선, 지역 먹거리와 체험형 프로그램까지 빠짐없이 담은 봄 여행 가이드를 제안합니다.
전주: 한옥 감성과 슬로우 푸드 여행
전주는 가족이 함께 천천히 걷고 맛보며 대화를 나누기 좋은 도시입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 동선은 유모차나 어린아이와 함께 이동하기에도 비교적 편안하며, 골목 곳곳에 위치한 공방과 체험 프로그램이 가족의 관심을 자연스레 묶어 줍니다. 먼저 경기전 돌담길을 따라 나무 그늘이 드리운 산책로를 걸어 보세요. 봄기운이 퍼지는 계절에는 새잎의 연두빛이 담장 위로 번져 사진만 찍어도 엽서 같은 장면이 완성됩니다. 어른들에게는 조용히 역사와 미학을 느끼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작은 정원과 비밀스러운 골목이 흥미로운 놀이터가 됩니다. 다음으로 추천할 코스는 전동성당과 태조로 일대의 카페·디저트 라인입니다. 지역 로스터리의 커피 한 잔, 아이를 위한 우유 아이스크림이나 수제 한과를 곁들이면 길고도 평화로운 오후가 이어집니다. 체험형 일정으로는 한지 공예나 부채 만들기가 인기입니다. 색 고르는 재미와 완성품을 들고 사진을 남기는 즐거움이 커서 아이들의 몰입도가 높습니다. 식사로는 비빔밥, 콩나물국밥, 전주식 모주와 함께하는 한정식 코스를 추천합니다. 반찬 가짓수가 풍성해 편식이 있는 아이도 몇 가지를 골라먹기 좋고, 어른들은 제철 나물의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한옥 스테이를 선택한다면 마당이 있는 숙소를 골라 늦은 오후 햇살이 기와에 내려앉는 풍경을 감상해 보세요. 야간에는 한옥마을의 조명이 은은하게 켜져 소란스럽지 않은 산책이 가능하고, 인근 오목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부담 없이 접근 가능한 포인트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주는 이동 동선이 짧아 하루에 많은 곳을 욕심낼 필요가 없습니다. “적게 이동하고 오래 머무는 것”이 전주 여행의 핵심이며, 그 리듬 속에서 가족의 대화가 자연스레 길어집니다.
경주: 유적과 놀이가 만나는 클래식 루트
경주는 봄꽃과 사적이 겹겹이 포개지는 도시입니다.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를 잇는 삼각 루트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친절한 동선으로, 넓고 평탄한 잔디와 데크 길이 많아 안전하게 걷기 좋습니다. 특히 봄에는 유채와 벚꽃이 시간대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 주는데, 오전엔 부드러운 빛으로, 오후엔 황금빛 역광으로 사진 결과가 달라져 같은 장소를 두 번 방문해도 좋습니다. 대릉원 고분군은 규모감 자체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실제 내부 관람이 가능한 고분에서는 고대 장례 문화와 유물 전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어 첨성대 주변 잔디광장에서 간단한 돗자리 피크닉을 즐기고, 동궁과 월지에서 물 위에 비친 전각과 봄하늘을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남겨 보세요. 비나 바람이 있는 날엔 경주박물관으로 이동해 실내 전시를 이용하면 리듬을 잃지 않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조금 더 깊이 있는 코스로, 사찰의 단정한 선과 봄 숲의 향이 어우러져 어른들에게는 사색의 시간을, 아이들에게는 돌계단·종루·연못 등 ‘손에 잡히는’ 공간 경험을 제공합니다. 경주 월정교 야간 조명 산책은 꼭 권하고 싶은 일정입니다. 다리 위를 건너며 강물과 기둥 그림자가 만드는 패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유모차 이동도 수월합니다. 식사는 황남동 일대의 한우 숯불구이나 쌈밥 정식이 무난하며, 아이들을 위한 우동·만두 메뉴도 함께 준비된 곳이 많습니다. 숙소는 보문단지 리조트형과 한옥형 게스트하우스 중 취향에 맞춰 선택하면 좋습니다. 리조트는 수영장·키즈라운지 등 부대시설이 좋아 비 소식이 있을 때 유용하고, 한옥형은 아침의 바람과 마당, 소리의 밀도가 남다른 체험을 선사합니다. 경주는 “배움과 놀이의 균형”이 핵심입니다. 지도 한 장을 같이 보며 동선을 아이와 상의해 결정해 보세요. 참여감이 높아질수록 하루의 만족도가 커집니다.
순천: 정원과 갈대, 생태가 들려주는 봄의 이야기
순천은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로, 가족 단위 봄 여행지로 손색이 없습니다. 대표 명소인 순천만국가정원은 테마 정원과 잔디광장, 아이들이 뛰놀기 좋은 놀이터와 체험관이 고르게 배치되어 하루 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봄에는 튤립과 수선화, 판타지컬한 색감의 초화류가 정원 길을 물들이며, 중앙 호수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유모차 이동도 편안합니다. 이어 순천만습지로 이동하면 갈대밭과 S자 물길이 만들어 내는 유려한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을 타임에 전망대에 오르면 갈대 위로 내려앉는 분홍빛 하늘이 가족 사진의 최고의 배경이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추천합니다. 염습지의 게와 물새 관찰, 철새 망원경 체험은 자연 수업과 놀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 줍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의 생활사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초가 마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굴뚝, 장독대, 돌담의 질감과 그림자가 아이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전통놀이 체험(제기·투호·널뛰기)으로 가족이 함께 웃을 거리가 많습니다. 순천 구도심은 로스터리 카페, 베이커리, 국밥집이 적당히 섞여 있어 취향을 맞추기 쉽습니다. 봄 제철 음식으로 꼬막정식과 짭조름한 새꼬막 비빔밥을 추천하는데, 아이들에게는 덜 매운 간장 양념으로 따로 비벼 주면 거부감이 적습니다. 숙소는 정원 인근 호텔이나 한적한 한옥 스테이를 고려해 보세요. 이른 새벽 새소리로 하루를 시작해 느긋하게 정원을 한 바퀴 도는 루틴이 순천의 시간을 가장 순하게 즐기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천은 ‘걷는 속도의 도시’입니다. 차로 빨리 지나치기보다, 정원의 길과 습지의 데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봄의 변화가 눈앞에서 자랍니다.
전주는 한옥과 맛, 경주는 유적과 꽃, 순천은 정원과 생태가 가족에게 각기 다른 봄의 기쁨을 선물합니다. 많은 장소를 욕심내기보다 ‘오래 머무는 일정’을 선택해 보세요. 이번 봄, 가족의 대화가 길어지고 사진보다 선명한 기억이 남는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