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와 광주는 남도 음식의 넉넉함과 전통 한식의 깊이를 하루 루트로 엮기 좋은 도시입니다. 이 글은 전통 한식의 결, 시장의 생동감, 로스터리·디저트 카페까지 ‘먹고 걷고 쉬는’ 3스텝으로 정리한 실전형 미식 코스입니다. 웨이팅 회피, 메뉴 선택, 동선 팁까지 담았습니다.
한식: 장과 밥의 균형, 전주·광주 대표 한 상 제대로 즐기기
전주와 광주의 한식은 ‘장과 밥, 반찬의 질서’가 뼈대입니다. 전주에서는 비빔밥을 단순 관광 메뉴로 치부하기보다 나물 손질과 장의 밸런스를 체크하며 맛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밥 짓기는 고슬하되 찰기를 살짝 남기고, 나물은 향이 강한 고사리·시금치·도라지와 담백한 애호박·무생채를 7~9종 조합해 층을 만듭니다. 고추장만 쓰지 말고 된장을 1:2로 섞어 감칠을 잡고, 참기름은 마지막 한 바퀴만—향이 과하면 나물의 결이 덮입니다. 국물은 사골만 고집하지 말고 다시마·표고·무를 쓴 장국을 곁들이면 전체 염도가 정리됩니다. 광주에선 한정식이 강점인데, 밑반찬의 결이 깔끔한 집일수록 메인도 과하지 않습니다. 탕평채·숙성 나물·홍어무침 같은 강·약 조합이 리듬을 만들고, 생선구이는 기름을 과하게 쓰지 않는 노릇한 화력 조절이 포인트입니다. 남도 한식의 핵심은 ‘밥의 온기’이므로 늦은 점심보다는 11:30~13:00 사이 입장해 갓 지은 밥의 스팀을 잡아야 합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은 ‘수란 vs 익힌 달걀’의 선택이 맛을 가릅니다. 수란은 국물의 열로 서서히 풀리며 부드럽고, 완숙은 콩나물의 아삭함을 더 명확히 보입니다. 광주의 떡갈비는 숯향이 과하면 소스와 충돌하므로, 은은한 불향과 결이 살아 있는 굽기(겉은 카라멜라이즈, 속은 촉)가 정답입니다. 동행의 취향이 갈릴 때는 전주 한옥권에서는 전주비빔밥·한우불고기·모주 한 잔을, 광주 양림·충장권에서는 한정식·육전·꼬막무침의 ‘공유 테이블’로 맞추면 실패 확률이 낮습니다. 술 페어링은 장맛을 흐리지 않는 약한 도수의 약주·탁주, 혹은 산미가 깔끔한 화이트·오렌지 내추럴 와인이 적합합니다. 식후에 바로 이동하지 말고 5분만 좌석에서 온기를 식히는 ‘쉼’을 넣으면 속이 편하고 다음 코스의 맛 집중도가 높아집니다.
시장: 남부·풍향·양동 시장을 걷는 법, 줄 서도 아깝지 않은 메뉴
전주 남부시장은 청년몰의 트렌드 먹거리와 원시장 노포의 대비가 매력입니다. 아침에는 콩나물국밥·오징어무침 같은 클린 메뉴로 시작하고, 점심 전후엔 전주식 피순대·막걸리 파전처럼 ‘기름–탄수–단백’이 균형 잡힌 메뉴를 소량으로 나눠 먹는 전략이 유효합니다. 야시장 시간에는 동선이 뒤엉키므로, 주말엔 오픈 직후 60~90분 동안 시장을 반 바퀴만 돌며 2~3곳만 확실히 공략하세요. 줄을 서야 한다면 회전이 빠른 메뉴(즉석 튀김·전·꼬치)를 우선으로 하고, 주문은 ‘대표1+보조1’로 과식을 막습니다. 포장은 종이·텀블러·개인 밀폐용기 지참이 시간·쓰레기 모두 줄이는 요령입니다. 광주의 양동시장·말바우시장은 ‘재료 보는 즐거움’이 핵심입니다. 가까이서 신선도를 보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생선은 눈동자 투명도와 아가미의 선홍색, 채소는 잎의 탄력과 절단면의 수분감, 떡·한과는 표면의 윤기와 깨끗한 단면이 기준입니다. 시장 분식은 지나치게 달지 않은 양념을 고르고, 국밥은 ‘맑은탕 vs 걸죽한탕’을 취향으로 갈라 시식해 보세요. 광주의 꼬막·김치·육전 라인은 소금과 식초의 선을 지키는 집이 맛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동선 설계는 ‘재료 쇼핑→간단 시식→산책→메인 식사’의 4스텝을 추천합니다.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도록 건조류·병음료는 마지막에, 냉장·냉동은 아이스백을 준비해 신선도를 지키세요. 위생은 상인·손님 서로의 매너입니다. 시식 꼬치 재사용 금지, 손 소독 후 시식, 쓰레기 분리 배출은 기본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상인에게 한마디 양해를 구하고, 인물 클로즈업은 간단히 감사 인사를 남기면 시장의 공기가 더 따뜻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지역 화폐·현금을 소액 준비하면 결제 대기가 줄고, 단골 상인에게는 재방문 약속을 남기면 다음 방문에서 작은 서비스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장은 오늘의 메뉴를 정해 주고, 내일의 식탁을 풍성하게 합니다.
카페: 로스터리·디저트 페어링, 한옥·양림 감성의 차분한 휴식
전주의 카페는 한옥마을의 온도와 잘 어울리는 ‘조용한 채광’이 매력입니다. 한지·목재·돌의 질감이 남은 공간에선 사진보다 ‘머무름’이 어울립니다. 로스터리는 산미가 선명한 에티오피아·케냐 싱글을 드립으로, 바디가 두터운 브라질·콜롬비아는 라떼로 선택해 페어링을 분리하세요. 디저트는 전주 특유의 단맛 결을 고려해 팥·유자·쑥 계열을 권합니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나 크림 비율이 높은 디저트는 라이트 로스트와 궁합이 좋아 입안이 무겁지 않습니다. 좌석 선택은 창 쪽 직사광선보다 반사광이 도는 자리를 고르면 피부 톤이 자연스럽고, 독서·대화에 집중이 됩니다. 광주는 양림동·사직공원 인근의 로스터리·베이커리 벨트가 탄탄합니다. 원두는 라이트–미디엄 로스트가 주류이고, 필터 커피의 TDS(농도)를 낮게 추출하는 곳이 많아 깔끔한 애프터가 남습니다. 빵은 버터 풍미가 강한 크루아상·브리오슈 라인이 강세인데, 커피의 산미가 높다면 솔티드 카라멜·피칸 계열을, 바디가 가벼우면 우유 크림·우지마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디저트를 고르세요. 두 도시는 ‘조용한 카페 문화’를 공유합니다. 통화는 실외, 키보드·아이패드 타건은 소리 최소화, 촬영은 타인의 얼굴을 피하는 구도로—이 기본 매너가 공간의 질을 지켜 줍니다. 루트 설계는 전주에서 한옥 감성 카페 1곳, 로스터리 1곳을 묶고, 광주에서는 양림동 로스터리 1곳+베이커리 1곳으로 2–2 균형을 추천합니다. 테이크아웃은 개인 텀블러를 준비하면 할인과 함께 이동 시간 절약이 가능하고, 드립백·병 콜드브루를 기념품으로 사면 집에서도 루틴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비·바람이 강한 날엔 통창 카페에서 비 오는 거리의 반사를 즐기며 속도를 늦추세요. 카페는 ‘다음 식사를 위한 여백’입니다. 급하게 많이보다 천천히 조금, 그리고 좋은 대화가 최고의 페어링입니다.
전주는 장·나물의 조화, 광주는 한정식의 리듬이 핵심입니다. 시장에서 재료를 보고, 한식으로 균형을 잡고, 카페에서 호흡을 고르면 하루가 단단해집니다. 이번 주말, 전주–광주 중 한 도시를 골라 ‘시장→한식→카페’ 3스텝으로 미식 루틴을 완성해 보세요.